2021. 6.27 (일)
이른 아침이라 부소산성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람객은 없어 보인다.
대신 주차장 옆 성당에 온 신도들과 새벽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만
다닌다.
매표소로 가니 코로나로 힘든 시기 다 함께 극복하자는 의미로 무료로
개방한다고 되어 있다.
백제의 도성이었고, 백제 성왕 때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비성
또는 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는 부소성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숲길 따라 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깨끗한 기와지붕의 화장실과 음수대도 이곳을 찿는 방문객에게
편리함을 더해주고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깜짝 놀란 것 중 하나가 무료로 개방된
깨끗한 공중 화장실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는 최선진국이 되었다.
옛부터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 화장실을 보면 그 집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오늘도 습도가 매우 높다. 음수대에서 시원한 물 마시며 땀을 식혀보지만
낙화암까지 20분 정도 걸으니 땀이 제법 난다.
백제 멸망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낙화암에서 백마강을 마주하니 조금은
숙연해진다.
낙화암에는 백제 멸망 때 스스로 투신해서 죽은 궁인을 기리며 세운
백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지금도 낙화암하면 '삼천궁녀가 꽃처럼 떨어져 죽은 곳'으로 인식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노래나 시에서도 낙화암 삼천궁녀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너무 과하게 미화해서 표현된 것이다. 몇십 명 정도였을 것이고
궁녀뿐만 아니라 내시까지 포함된 궁인이 맞을 것이다.
하얀 꽃처럼 떨어지며 죽은 궁인을 기린 '백화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이
왠지 슬퍼보인다.
백제 사비성에 삼천 명이나 되는 궁녀는 없었겠지만, 슬프고 아름다운
낙화암 삼천 궁녀의 이야기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낙화암에서 경사가 급한 계단길을 내려가면 고란사가 보인다.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보다 고란초가 어떻게 생겼는지 더 궁금해진다.
법당 뒷편에는 절벽 틈새로 솟아나는 약수를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고란 약수터가 있다.
물 주걱으로 한가득 채워 마셔본다. 그냥 평범한 물맛이다.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고란초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고란초가 거의 멸종하고 절벽 틈새 몇 포기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백제 멸망과 더불어 이제 고란초도 명이 다 되었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란사를 나왔다.
저녁에는 처조카와 만나기로 했다.
혼자 여행을 다닌다고 하니, 대전에 사는 처조카가 이곳 공주까지
오겠다고 한다.
조용한 금강변에서 모닥불 피우고 시원한 맥주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겠다고 하니 고맙기만 하다.
약속 시간을 감안하여, 정림사지 5층 석탑부터 돌아보기로 하였다.
국보 9호인 귀중한 유산으로 완벽한 기하학적 구조를 지닌 탑이다.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소정방이 탑 1층에 '대당평백제국비명'이란
8자를 새겨 놓은 아픔을 간직한 탑이기도 하다.
나라가 망하니 탑까지도 영원히 수모를 겪는구나....
아름다운 영상미가 돋보이는 정림사지 박물관도 함께 볼 수 있다.
360도 3D 영상을 보고 나니 어지러움을 느꼈다.
다음으로 정림사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공산성으로 갔다.
주차장이 꽉 찰 정도로 차량은 많았지만 넓은 공산성으로
들어가니 한산하기만 하다.
더운 날 마스크 착용을 하려니 많이 불편하다. 사람 마주칠 일이
간혹 있다 보니조금 참아야겠다.
공산성 내에 '쌍수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조선 제16대 왕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서
6일간 머물 때, 이곳 두 그루 나무(쌍수)가 있는 곳에서
시름을 달래곤 했다고 한다.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두 그루 나무에게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벼슬을 받은 두 그루 나무는
지금까지 살아 있을까? 속리산 정2품송은 잘 관리되고 있는데..
공산성을 나와 마지막으로 마곡사를 둘러보고 처조카와 약속한 장소로
가면 될 것 같다.
마곡사 주차장도 만차이다. 마곡사로 올라가는 계곡에는 물놀이 인파가
가득하다.
마곡사는 신라 선덕 여왕 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천년 고찰이라고 한다.
2018년, 사찰로는 7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출가하여 수행하였던 마곡사에서 김구 선생(원종스님)의
72주기 추모 다례가 6월 26일 열렸다.
마곡사를 나와 처조카와 약속한 금강변으로 가보니 햇살은 뜨겁고
마땅한 그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해가 어느 정도 기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처조카가 직접 제작했다는 화로대에 장작을 피운다.
고기, 새우, 소시지, 고구마 등을 구워 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니 별미가
따로 없다. 일주일 동안의 피로가 한순간에 다 날아간다.
코로나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조카와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형 아이스박스에 가득 채워 온 맥주와 소주를 몇 시간 만에다 마셨다.
여행 좋아하는 나를 위해 직접 제작한 화로와 의자까지 선물하겠다고
했지만 마음만 받기로 했다. 혼자 다니는 여행에는 짐만 될 것 같다.
2021년 6월의 마지막 하루를 금강에서 함께해준 조카에게 고맙고,
빨리 코로나로부터 벗어나 다 함께 모이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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