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3 (금)
스페인 여행 9일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톨레도를 가기 위해 서둘러 숙소를 나선다. 아토차역에서 기차로 1시간 이면
갈 수 있다. 아토차역에 도착해서 톨레도행 기차표 판매소를 찾으니 쉽게 눈에 띄지가 않는다. 몇 번을 물어 역사 한쪽
구석에 있는 조그만 매표소를 찾았다. 오늘 오전 중 표는 매진되어서 오후 표만 있다고 한다. 잠시 고민 끝에 여행계획을 내일 일정과 바꾸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음날인 14일 기차표를 왕복으로 끊었다. 기차표를 받아 들고 매표소를 나와
내일 일정표를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아뿔싸... 내일은 마드리드 왕궁 방문이 예약되어 있다는 것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다시 매표소로 돌아가 오늘 오후표라도 좋으니 교환해 달라고 하자, 그 사이 오늘 것은 늦게라도 갈 수는 있으나 돌아올
표가 없다는 것이다. 기차표를 취소하고 돈을 환급받아 톨레도 가는 다른 방법을 알아보니 버스로 가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시내버스를 타고 PLAZA ELIPTICA에 있는 ALSA 버스 터미널로 가보니 톨레도로 가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이제 다른 방법이 없으니 티켓 판매기에서 왕복표를 구입하고 긴 줄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출발하고 있었다.
줄에 서있으니 외국인이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다. 신기해서 내가 한국 사람인 줄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집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며 집사람을 소개해준다. 뉴욕에 살지만 그들도 은퇴하고 여행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덕분에
버스 탑승 시까지 1시간 30여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고 12시 30분 출발하는 버스 편에 탈 수 있었다. 여자분은 나와 동갑
이었다. 친구들이 자기 보고 여행 자주 다닌다고 부자로 안다고 했다. 사실은 친구들이 자기보다 잘 살지만, 그들은 돈
쓸 줄도 더구나 해외 여행할 줄도 모른다고 했다. 국제결혼한 여자분이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는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지
싶다. 돈은 쓰고 죽어야 한다며 은퇴 후 남편과 세계여행을 다니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하며 그동안 여행다닌 이야기
를 늘어놓는다. 나에게 "왜 혼자 여행 다니냐?"고 묻는다.
같이 있는 20대 나이의 딸 복장을 보니, 아랍계 복장이고 얼굴은 한국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아 보였다.
톨레도 가는 도로는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가 된 라만차 평원이
스쳐 지나고 있다. 톨레도는 안동 하회마을처럼 말굽 모양의 강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마을 전체가 중세
건물로 가득 찬 역사도시임을 터미널에 도착하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 모두가 곧바로 마을 안으로 들어
간다. 나 혼자만 마을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티구스 강을 건너 마을 외곽도로를 따라 트레킹을 시작한다.
티구스 강을 건너려면 로마시대 축조된 알칸타라를 건너야 한다. 알칸타라는 아랍어로 교량이라는 뜻이다.
이제 뜨거운 날씨도 조금은 풀이 죽은 것 같지만 걸으니 땀이 많이 나는 것은 여전하다. 어둡기 전에 숙소에 돌아가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조금 힘들어도 도시 외곽으로 트레킹을 해야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다. 내 여행스타일이 매일 2만 5 천보 이상을 걷게
만든다. 그러니 집사람과 함께 여행하기가 힘든 가장 큰 이유이다.
아래 사진이 마을 전체 풍경이다. 얼핏 보아도 예사롭지 않고 뭔가 있어 보인다.
알칸타라를 건너 외곽으로 부지런히 1시간 걸으면 다시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산 마르틴 다리가 나온다.
산 마르틴 다리를 건너 10분 거리에 엘 그레코의 집이 있다. 엘 그레코의 집은 원래 귀족의 저택이었으나 지금은
엘 그레코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입장료는 3유로이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서 젊은 시절 베네치아 화가로 활동하다가 17세기말 펠리페 2세의
궁정화가가 된다. 하지만 왕의 미움을 받아 톨레도로 옮겨와 죽을 때까지 많은 종교화와 초상화를 남겼다.
사진은 종교색이 덜한 것만 올렸다.
엘 그레코의 집에서 곧장 대성당으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다. 톨레도를 여유 있게 돌아보려면 일찍 오면 좋다.
오후에 오게 되면 마음이 바빠진다. 작은 도시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볼거리도 많기 때문이다.
건물벽에 부겐베리아가 활짝 피었다. 주변의 칙칙한 회색과 대비되어 붉은 꽃이 돋보인다. 더구나 문 앞에 뿌리박은
가느다란 줄기에서 풍성한 꽃을 피워내는 것이 대단하다.
톨레도 마을 길은 대부분 좁다. 적의 침입으로 부터 유리하게 방어를 하기 위해서 인 것 같다.
대성당 정면에는 3개의 문이 있다. 오른쪽이 심판의 문, 중앙의 용서의 문, 왼쪽이 지옥의 문이라고 한다.
누가 좌, 우측 문으로 들어가겠는가? 특히 지옥의 문으로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대성당 옆에 있는 소코도베르 광장에는 관광객이 항상 몰리는 중심지이고 식당 및 야외 테이블까지 만석이다.
다른 볼 곳도 많지만 시간상 알카사르 옆에 있는 십자가 모양의 건물인 산타 크루즈 미술관만 보기로 한다.
1514년 멘도사 추기경의 뜻에 따라 자선병원으로 운영하다가,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대부분
엘 그레코가 그린 종교화가 전시되어 있다.
톨레도 버스터미널로 가니 다행히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사람이 아직은 많지 않아 쉽게 탑승할 수 있었다.
오늘도 계획대로 무사히 여행일정을 마쳤다. 스페인 시내버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잘 되어 있다.
버스가 정차하면 차체가 인도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가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또한 유모차나 휠체어를 위한 공간도 확실히 마련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유모차나 휠체어로 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유럽이 선진국임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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