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23 (금) 7일째
아침이면 어김없이 이슬람 사원에서 들려주는 아잔의 소리가 들린다.
어제저녁에는 아잔 노랫소리가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사원 2개가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한 소절씩 번갈아 가며 노래한 것이었다.
밖을 보니 여명으로 어둠이 가시고 있다. 밤새 추워서 머리까지 이불로 감싸고
잤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풀린다. 날씨가 심상찮다. 언제 비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우산을 챙겨들고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숙소를 나선다.
숙소 옆에 50m 간격으로 미나레가 하나인 초라한 작은 사원이 위치하고 있다.
이른 아침 빵가게 안에는 빵을 사러 온 남자들이 보이고 가게 앞에는 배달 나갈
빵 상자들이 놓여 있다.
이어폰을 통해 청아한 목소리의 나나무슈꾸리가 부르는 Morning has Broken 이 들린다.
절묘한 시간대의 노래이다. 음악을 들으며 언덕길을 따라 무작정 올라간다.
높은 곳으로 가야 좋은 전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이른 아침부터 이발소가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새벽 기도하고 오면서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걷다보니 튀르키예 국기를 흔하게 본다. 애국심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국기에
새겨진 초승달과 별이 이슬람교의 상징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국기사랑
하는 튀르키예인이 존경스러워진다.
우리세대는 어릴 때부터 나라 사랑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집집마다 태극기가
없는 집이 없었다. 때문에 국경일에는 온 동네가 휘날리는 하얀 태극기로 넘쳐났었다.
하지만 자식 세대를 보니 집에 태극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드무니 국기게양은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 나라 국기가 많이 휘날리는 나라로 여행 오면
그 나라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든다.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한결 몸이 가볍고 힘들지 않다. 가호의 경쾌한 '시작' 노래가
나온다. 한꺼번에 몰아서 본 '이태원 클라쓰' 드라마가 생생하게 생각난다.
미나레가 2개인 모스크가 보인다. 이스탄불을 떠나 이곳까지 오면서 처음 보는 2개의
미나레가 있는 사원이다. 차창밖으로 본 스쳐 지나는 시골의 사원들은 모두 미나레가
하나였다.
오르던 길을 뒤돌아보니 깨끗한 거리와 어울리는 아침 하늘이 아름답다.
튀르키예 건물의 지붕은 모두 붉은 기와로 마감을 하고 있다. 국기를 포함해서
붉은색을 좋아하는가 보다. 박통 시절에는 붉은색은 공산당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 사용을 잘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오죽했으면 '빨갱이'라는 말도 생겼을까?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올라도 좌우로 늘어선 아파트 건물에 가려 좋은 조망처를
찾지 못하겠다. 때마침 경쾌한 리듬의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이
나온다. 망설임을 접고 더 올라가본다. 결국 아래 사진 한 장 건졌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이 내려갈 때는 올라왔던 길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로 한다.
조그만 마을에서 길을 잃을 이유가 없다.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는 멀리서도 보이니까.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날씨다. 스마트워치가 섭씨 8도라고 알려준다.
계절의 마지막 꽃인 접시꽃, 장미, 나팔꽃, 분꽃 등이 열매를 맺고 시들어가고 있다.
내리막 길을 걷다 또 옆길로 벗어나 가보니 협곡과 넓은 분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멋진 풍경이다. 역시 많이 걸어야 얻는 게 있다. 2시간 새벽 산책의 결과이다.
몸도 어제보다 한결 가볍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 봤으면 얼마나 좋을꼬...
숙소로 돌아오면서 Oh Danny Boy 노래를 듣는다. 목가적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노래이다.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하는 멜로디이지만 알고 보면 슬픈 내용의 노래이다.
전쟁터로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부모의 메시지가 담긴 가사이기 때문이다.
Oh Danny Boy 노래를 들으면 예전에 봤던 '태양의 제국'과 '진주만' 영화가 떠 오른다.
모두 2차 대전 중 전범국 일본으로 인한 슬픈 스토리를 가진 영화속의 배경음악으로
기억된다.
영화 '태양의 제국'은 일본이 중국 상하이를 공격할 때 부모와 헤어진 어린 아들이
마지막에 극적으로 상봉하게 되는 내용이고, 영화 '진주만'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한 여자를 사랑한 두 사람의 공군 조종사 친구 간 비운의 사랑이야기이지만, 전쟁이라는
지옥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음악으로 코끝을 찡하게 했던 노래이다.
8시가 조금 넘어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이 아침을 마련해 준다. 큰 빵과 치즈, 삶은 계란,
소금에 절인 올리버, 달꼼한 꿀에 튀르키예의 국민 디저트인 로쿰도 있다.
맛있게 먹고 있으니 따뜻한 차도 한잔 가져다준다.
식사를 마치고 아침 산책했던 글을 적고, 오늘도 3만 보 여행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간다. 비가 올 듯 말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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