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21 (수) 5일째
아잔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갈 준비를 마치고 술탄 아흐메드 트램역으로 향한다.
반팔 티셔츠만 입고 나서니 새벽 날씨가 쌀쌀하다. 온도계를 보니 섭씨 16도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여명 상태라서 블루모스크 및 아야 소피아 성당의 조명이
켜져 있다.
이스탄불의 상징이기도 한 1500 년의 역사를 지닌 아야 소피아 성당은 ‘로마법 대전’을
편찬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건립한 그리스 정교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오스만 제국 때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때문에 이슬람 장식과 기독교 성화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성당에는 오스만 제국 때
이슬람 사원으로 변모하면서 세운 4 개의 미나레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4차 십자군 전쟁은 가장 수치스럽고 잔인한 전쟁이었다.
십자군은 같은 그리스도교 도시였던 자라를 점령하여 약탈을 자행하고,
비잔틴제국의 대표 성지인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성당에도
말을 타고 들어가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였다. 또한 열 살에서 열두 살 사이의
소년들을 모아 배에 태워 노예상에게 파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이후 8차
십자군 전쟁까지 모두 흑역사를 남기고 실패하였다.
아야 소피아 성당을 보니 십자군 전쟁뿐만 아니라 마녀사냥, 면죄부 판매 등등..
인간이 종교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며 지금도 종교분쟁 및
종교팔이 이권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인간세상인 것이다.
트램을 타고 갈라타 다리 앞에서 내려 99A 버스로 갈아타면 피에르 로티 언덕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갈라타 다리와 에미뇌뉘 광장에 있는 뤼스템 파샤 모스크의
조명이 멋있다.
99A 버스정류장 앞에서 시밋(빵) 한 개를 5리라(400원) 주고 샀다. 숙소에서 타 온 믹스커피가
있으니 아침 식사용으로 그만이다.
피에르 로티 언덕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로티가 즐겨 찾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언덕에 올라서면 '골든 혼'을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라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
때문에 언덕 정상에는 카페들이 진을 치고 있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케이블카가 있는 골든 혼(금각만) 쪽의 언덕 전체는 공원묘지이다.
피에르 로티 언덕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 에윱 술탄 모스크가 있다.
에윱 술탄 모스크는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제자 에윱이 콘스탄티노플 공략 때
숨진 곳에 세워진 사원이다.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에 이어서 네 번째로 중요한 이슬람
순례지이다. 특이하게 사원 중정에 나무가 있었고 사원 밖 광장까지 하얀 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다. 많은 순례객이 찿는 성지이다 보니 주변에 상점도 많고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다. 술탄이라고 해서 반드시 왕을 의미하는 것을 아니고 예우 차원에서
술탄을 붙이는 경우도 있으니 이곳 에윱 술탄 모스크가 그러하다.
에윱 술탄 모스크에서 금각만을 따라 10여 분 걸어 Ayvansary 페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Fener까지 이동하기로 한다. 이스탄불 교통카드로 페리를 탈 수 있으며
페리도 이스탄불에서는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다. 금각만을 따라 좌우로 이동하면서
승객을 나르는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동방 정교회와 언덕 정상에 있는 야부즈 셀림 모스크를 보기 위해 Fener 선착장에서 내렸다.
종교에 대해서는 무뢰한이지만 Orthodox Church라는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어
동방 정교회(그리스 정교회)라고 생각한다.
오스만 제국은 소수 민족과 이교도에 대해서 완전한 자치와 종교를 절대적으로
보장하였다. 그래서 현재까지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 이스탄불에 있는 것이다.
자신과 다르더라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이슬람 본래 정신이 튀르키예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교회 내부로 들어서니 엄숙한 음악이 나오고 스테인드 글라스로 스며드는
빛이 좋아 한참을 머물었다. 교회 규모는 작으나 건물 전체가 조립식 철판으로 지어졌다.
정상에 서야만 좋은 조망을 볼 수 있으니 힘이 들어도 언덕 정상에 있는
야부즈 셀림 모스크로 올라간다.
야부즈 셀림 모스크에서 걸어서 20분이면 유명한 파티흐 모스크가 있다.
파티흐 모스크 주변으로 엄청난 규모의 재래식 장이 열리고 있었다.
도로 전체를 차단하고 장이 선 것을 보니 우리나라 5일장 같다.
시장 입구에서 사진을 찍으니 경비원이 제지를 한다. 이슬람 전통복장을 한
여자들이 많이 보인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자 사진을 함부로 못 찍게 한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그냥 시장 풍경을 찍을 뿐이지만 조심해야겠다.
아래 사진은 시장 입구라서 조금 한산하다. 이후 100여 미터 시장길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복잡해서 빠져나오는데 한참 걸렸다.
복잡한 시장길을 10분 넘게 가로질러 파티흐 모스크에 도착하고 보니 모스크
주위 3면이 모두 시장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덕분에 튀르키예 장날 구경은
제대로 하였다.
이스탄불을 점령했던 오스만 제국의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의 이름을 딴 사원이며
1470년에 완공한 최초의 왕실 모스크이다. 파티흐는 정복자를 의미하므로 정복자
술탄 메흐메트가 되는 셈이다.
왕실 모스크 답게 대리석으로 주변을 전부 포장하고 규모도 크다. 원래 모습은
모스크를 포함해서 학교, 도서관, 시장, 목욕탕, 왕실의 영묘 등을 갖춘 복합단지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귤바하르 왕비의 묘가 있다.
귤바하르 왕비는 비잔틴으로 시집가기 위해 프랑스에서 건너왔으나 콘스탄티노플이
공격당했을 때 포로가 되어 메흐메트의 첩이 되어 나중에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본당 입구에 아기가 방실거리며 웃고 있다. 어쩌다 보니 아기 아버지와 한참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기 아버지가 유창한 영어로 이것저것을 많이 물어본다.
아기는 이제 11개월 되었다고 하며 자신의 어머니까지 소개해준다.
내 나이 65세이고 손자가 3명 있다고 하자 깜짝 놀라면서 무슬림식 인사까지 한다.
자기가 볼 때는 40세 정도로 보았고 동양인은 생각보다 젊어 보인다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수염을 기르고 있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있는 줄 알았다며
서로 웃는다. 40일 동안 튀르키예 여행을 할 것이라고 하니 튀르키예는 볼 것이
많으니 건강하게 여행하라고 한다.
화장실을 찾다 보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지하상가로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했는 매우 깨끗한 화장실뿐이다.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까지 있다.
물론 여자는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세상에.. 계단은 아예 없다..
왕실 모스크에 걸맞는 수준이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본당을 보고 나오려니 히잡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길을 막고 말을 걸어온다. 대뜸 무슬림이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답하고 나오려니 계속 말을 건다. 대충 알아듣은 말이 '시리아, 베이비, 5명,
음식' 정도이다.
조합을 해보니 시리아에서 왔는지 아니면 터키어로 시리아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기 5명 음식이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것 같다. 갑자기 측은지심이
발동해서일까. 선뜻 100리라(8천 원)를 주니, 내가 준 돈은 1 베이비 것이라며
5 베이비 몫으로 더 달라고 한다.
세상에... 100리라면 시밋(빵)을 10개 이상 또는 옥수수를 한 자루 살 수 있는
돈인데...해외여행하면 한 번씩 꼭 이런 일을 겪어면서도 학습효과는 그때뿐이다.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했다 생각하고 숙소를 향해 걷는다. 구글맵을 보니 차 타고
가는 시간이나 걷는 시간이나 거의 40분으로 같기 때문이다.
오늘도 3만 보 걸으면 되니까..
도중에 시청 앞을 지나게 되었다. 실물 같은 사람 조형물이 있어 안내판을
읽어보니 사연이 있었다.
7월 15일. 사라체인 기념비라고 되어 있는 안내판 내용은
'7월 15일 쿠데타가 일어난 밤, 이스탄불시를 점거한 반역자들이 숨어있는
건물에서 조국을 지키는 국민에게 총알을 쏟아부었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우리 영웅들은 몸을 씻는 것으로 무장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씻음이 없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감사하고 우리 순교자들과 참전 용사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라고 적혀있다.
여기서 몸을 씻는다는 말은 아마 무슬림은 신을 알현하기 위해서는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한다. 즉 신앙으로 무장하고 대항했기에
죽음 자체는 두렵지는 않으나, 알라에 대한 믿음 없이 신을 만나지 못하고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말인 것 같다.
내일은 사프란 볼루로 이동한다. 버스로 8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 한 달 전 조사한
버스요금이 270리라(21,000원)였는데, 오늘 버스 예약사이트로 들어가 보니
350리라(27,000원)로 30%나 올랐다. 튀르키예의 높은 인플레이션을 실감한다.
대부분 물가가 한국과 비슷하다. 주차요금도 한 시간에 거의 2천 원이고, 한 끼
식사도 보통 만 원은 된다.
책상도 없는 숙소에서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몇 시간씩 글을 쓰려니 많이 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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