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6 (목) 여행 22일째
새벽 비 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어제 저녁에 포트와인 한 병을 마셨더니 간만에 잠을 푹 잔 것 같다.
오늘은 비도 문제지만 바람이 14m/sec로 거세다. 8시가 다되어 가는데도 하늘은 어둡고 비와 안개로 도시가 부옇다.
9시쯤 호텔식당에서 조식을 하고 빗줄기가 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11시가 다 되어 북대서양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infante 트램정류장으로 간다. 볼사 궁전 근처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빗속에서도 트램을
타기 위해 모여든다. 정류장 앞 진한 갈색 건물의 맥도널드 매장이 보인다.
내가 전차를 처음 타 본 것은 거의 60년 전이다. 부산 초량동에서 전차를 타고 영도에 사시는 고모집으로 한 번씩 놀러 가곤
했었다. 그때 당시에는 하루에 두 번 영도다리가 올라가면 전차는 멈추었고 다리 밑으로 배가 지나가고 나면 다리는 다시 내려온다. 지금은 작동을 멈춘 지도 이미 몇십 년이 지났다.
포르토 트램(전차)은 편도 5유로, 왕복 7유로를 기사가 직접 받는다. 진동 및 소음, 흔들림이 많다. 운전석은 앞 뒤로
두 군데 있다. 종점에 도착하면 운전석을 바꾼다. 이때 기사가 내려 가공선로에서 전원을 공급받는 연결봉을 당겨서
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트램 내부 조명도 옛날식 백열등이다. 내릴 때는 끈을 당겨 기사에게 신호를 줘야 한다.
1번 트램을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도루 강 하류에 있는 Passeio Alegre이다. 스페인에서 발원한 도루 강이 900Km의
긴 여정을 마치고 포르투갈의 이곳에서 북대서양과 만난다.
트램에서 내리니 기상상태는 최악이다. 강풍에 우산은 견디지 못한다. 부산에서 자라고 포항에서 살다 보니 바다는
친숙하지만, 북대서양을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일회용 우의를 입고 해안가를 따라 걸어간다.
기상상태가 나쁘니 등대나 해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모두 막아 놓았고 경찰 순찰차도 몇 대가 배치되어 있다.
공원이 있고 옛 요새가 있는 것 말고는 바닷가 풍경 자체는 평범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온다.
대서양(Atlantic Ocean)은 태평양 다음으로 큰 대양이다. Atlantic 은 그리스 신화 아틀라스에서 나온 말이다.
적도를 기준으로 위쪽을 북대서양, 아래쪽은 남대서양으로 나누어 부른다. 북대서양 하면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군사 동맹체인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가 먼저 생각난다.
트램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안 보인다. 비와 바람을 피해 뿔뿔이 흩어진 모양이다.
나 혼자 해안 길을 씩씩하게 걷고 있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어 트램을 타고 숙소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숙소 근처 트램정류장에 내리니 비가 뚝 그치고
잠시 밝은 해까지 나온다. 숙소로 가는 도중 전망이 좋은 곳이 보인다. 포르토의 전경을 마지막으로 휴대폰에 담는다.
우의를 입었어도 이미 바지는 흠뻑 젖었고 신발은 물이 차서 질컥거린다. 오후 2시가 다되었다. 빨리 점심을 먹고 숙소로
가야 뒷마무리가 될 것 같다. 식당을 찾고 있는데 감미로운 아드리느를 위한 발라드 기타 연주곡 소리가 들린다. 길거리
악사인데 수입은 영 신통찮다. 동전 2~3개가 전부다. 튀르키예 여행 때는 제법 적선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내 코가 석자이다.
석쇠에 구운 닭고기 스테이크와 볶음 밥이 있는 식당이 보인다. 고민할 필요 없는 최고의 메뉴이다. 들어가니 자리가 없다. 주인이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옆 집 인도식 식당에 한국 여성 세 명이 들어가는데, 그중 한 명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어울려 여행 다니면 흔히 생기는 문제 중 하나가 식사 때 메뉴 정하는 것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호텔로 돌아와 바지와 신발을 헤어드라이어와 히터로 말리니 생각 외로 잘된다. 객실에 전기히터가
있어 밤에는 쾌적하게 잘 수 있었고, 간단한 빨래도 말릴 수 있어 매우 좋았다. 며칠 사이에 저녁에는 쌀쌀하다. 비만 오지
않으면 지금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이다.
여행기록을 정리하다 보니 저녁 6시이다. 다시 빗방울이 가늘게 내린다. 내일은 프랑스 파리로 넘어간다.
공항 갈 때는 비가 오지 말기를 빌어보며 파리 날씨를 조회해 보니 그곳도 날씨가 심상찮다. 이번 여행은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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