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튀르키예 여행 (이스파르타, isparta)

2022. 9.30 (금) 여행 14일째

몇 좌석밖에 남지 않은 이스파르타행 차표를 확보하기 위해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나선다. 숙소에서 주는 아침은 못 먹었지만 조용한

새벽길을 걷는 것이 속은 편하다.  10여분 걸어 알라딘 트램역에 도착하니

한 사람만이 트램을 기다리고 있다. 

트램이 아닌 버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분이 트램이 오려면 2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며

말을 걸어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장황하게 말을 한다. 특히 한국영화 많이 봤고

좋아한단다. 오징어게임, 부산 영화....

부산 영화라고 자꾸 강조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영화 이름은 모르겠지만

기차 안에서 좀비들이 난무하는 영화도 있었고 해운대 영화도 본 기억이  난다.

아이돌도 좋아한다고 하는데 나이를 봐서는 아이돌을 잘 알 것 같지는 않으나

BTS는 세계적인 매스컴을 탔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이름은 '후세인'이라고 한다. 내가 "그 유명한 사담 후세인과 이름이 같냐?"

라고 하자 크게 웃으며 담배를 건넨다. 감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하자 조금 떨어져서

피운다.

나이살은 못 속이겠네.

종점이자 시발점인 알라딘역에서 탔을 때는 승객이 없었으나, 다음 역부터 

사람들이 타기 시작하는데 한결같이 나이가 최소 50대 이상인 남자들만

계속 타더니 몇 정거장 안 가서 좌석을 거의 다 채운다.

승객들을 면면히 살펴보니 새벽일 나가야 하는 중산층  수준의 사람들

같아 보인다.  허름한 옷 또는 작업복을 입고 부스스한 얼굴들이다. 

승객들은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들처럼 서로 인사를 나눈다.

 

6시 50분에 터미널 도착해서 8시 출발 표를 사러 이스파르타 버스회사로

가니, 7시에 출발하는 카밀콕 회사 버스가 있으니 거기로 가라고 한다.

화장실도 가야 하고 너무 촉박한 것 같아 그냥 8시 차를 타겠다고 200리라에

표를 샀다. 화장실 다녀와서 아침에 내 나름대로 확인한 것을 다시 보니

7시 15분 출발 카밀콕 버스이다. 불과 한 시간 전에 확인하고 화면 캡처까지

한 것을 기억을 못 한다. 카밀콕 직원이 자기 회사로 오라고 불렀을 때, 

7시 출발 버스로 잘못 알고 거절까지 했다.

 

이제는 몇 번을 확인해도 자꾸 잊어버린다. 그래서 버스표를 끊고 나서도

출발 때까지 몇 번씩이나 표를 다시 꺼내 출발시간, 승강장 번호,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증세가 생겼다. 심지어 여권을 제시하고 돌려받았는데도

조금 있다가  확신이 들지 않아 다시 가방을 열어 여권이 있음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진다. 나이 탓이려니 하고 위안을 삼을 수밖에..

 

버스가 출발하자 곧 잠이 든다. 눈을 떠보니 1시간 20분을 곯아 떨어진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콘야까지 올 때 본 풍경과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고도가 낮은

도시 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서서히 수목들이 많이 보인다. 수목한계선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다.

수목이 보이기 시작하는 아나톨리아 고원지대

버스 좌석에 장착된 모니터에서 앵그리 버드 게임과 당구게임을 해 본다.

모니터에 열중하니 얼마 되지 않아 멀미가 나기 시작해서 그만두었다.

이스파르타는 20여 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로 장미 재배 및 장미수, 장미오일을

생산하고 있는  ‘장미의 도시’이다. 

이스파르타 장미의 역사는 1888년 한 무역상인이 불가리아에서 장미 씨앗을

지팡이에 숨겨와서 재배하였다고 한다. 문익점이 붓통 안에 목화씨 숨겨

가져온 것과 똑같다. 이곳에서는 ‘다마스크 로즈’라는 한 종류의 장미만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장미수나 장미오일를 첨가한 향수나 화장품은 10시간 이상 향이 지속되어

고급제품 생산을 위한 필수 원료라고 한다. 이스파르타 장미오일는 전 세계

장미오일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장미 최대 생산국인 불가리아 제품보다

이곳의 장미오일를 더 알아준다고 한다.

5,6월에 이곳을 방문하면 도시 전체가 장미향으로 뒤덮여 황홀함에 취해

볼 수도 있을 텐데.. 9월의 마지막 날에 이스파르타에 왔으니 내일은 바다같이

큰 에이디르 호수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숙소까지 20분을 걸었다. 가로수도 잘 조성되어 있고 거리는 깨끗하다.

2Km 이내 정도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걷는다. 걸으면 그만큼 볼거리가

많으니까.

이스파르타 거리

이스파르타 대학교

이스파르타 대학교 앞 도로

숙소에 도착하니 20대 젊은 직원이 친절히 반긴다. 무엇보다 인터넷 환경을

확인하고 내 노트북까지 완벽하게 접속시켜 주고 간다. 제일 고마운 일이다.

그동안 못한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어둠이 찾아오고 있다.

여기 시간으로 오후 6시 30분. 한국은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MBC '별이 빛나는 밤에' 방송이 흘러나온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대충 정리를 했으니 밤거리로 나가봐야겠다. 1층으로 내려가니 직원이

저녁 식사하기 좋은 식당을 알려준다. 곧바로 소개받은 식당으로 찾아갔다.

호들갑스럽게 주인이 맞이한다. 주방에도 나를 데리고 들어가 구경을 시켜준다.

양고기에 밥 위에 가지볶음을 얹어서 달라고 주문했다. 양이 너무 많아 빵은

한조각도 다 못 먹었다.

가격도 음료수 포함 73리라(5,600원)로 정말 착한 가격이다. 튀르키예 와서

가장 가성비 좋은 저녁을 먹었다.  괴레메에서는 옥수수 2개가 60리라였다.

내일 저녁에도 이 식당에 와서 다른 메뉴를 시켜봐야겠다.

가성비 최고의 저녁 (5,600원)

식사 후 주변 거리를 조금 돌아보니 이곳이 가장 번화가인 것 같다.

장미 관련 향수, 비누 등을 파는 곳이 많고, 가로수도 장미 문양으로 

되어 있다. 장미는 없지만 장미 향수는 거리에서 얼마든 맡을 수 있었다.

이스파르타는 장미의 도시임이 분명하다.

튀르키예 유심 가격은 저렴해 보인다.  통화 750분, 문자 250, 데이터 10 GB가

85 터키 리라(6,600원)이다.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는지는 모르겠다.